이번 임무도 어렵지 않게 끝났다. 검에 끈적하게 붙어 떨어지지 않는 혈흔을 손가락으로 쓸어보다 그만두고 정리해 넣었다. 빨리 돌아가고 싶다- 멍하니 이어지는 생각만이 머리속을 가득 채웠다. 나를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서, 웃으며 맞아주는 그대와… 아참.
“저기, 천호씨는?”“아, 그 쪽은 아직 정리가 안됬다는 것 같던데… 고전중이라나봐요. 어라? 하운씨, 하운씨! 어디가요!!”
숨이 차오를 만큼 급하게 달려 그가 있을 영석초원으로 향했다. 푸르른 초원은 사실 이미 오랜 옛날에 푸른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구역질이 올라올 것만 같아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일 초라도 빨리 그를 찾기위해 시선을 돌렸다.
대치중이다, 라고 생각한 즉시 무장한 그의 팔이 힘 없이 떨어졌다. 놀라 그에게 달려갔다. 그 이유는 그에게 조금 가까워졌을때야 눈치 챌 수 있었다. 어깨의 푸른 깃을 바람에 휘날리는 무림맹의 상급 맹원은 그의 동생이었다.
"형, 저기 형수님이 놀라서 달려오는데?"
"-!? 뭐,"
놀라 저를 돌아보는 그를 단번에 와락 끌어안았다. 다행이다. 이상하리 만치 왈칵 쏟아져 나온 감정에 그가 허둥대는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멀리서 보고,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요…?"
"하,하하… 설마, 내가 그대를 두고 어딜 가겠소."
"와, 연인 사이에 끼어있으니까 엄청 민망한데. 알려줄게 있어서 나온거라, 막 벗어나지도 못하겠네."
들려온 다른 이, 그의 동생 인호의 목소리에 겨우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알려줄 것 이라니, 그건 무슨 의미인게냐."
"나랑 율후는, 이제 이런 임무에 참여하지 않을거야."
아마 저 묘해진 천호씨의 표정과 내 표정은 비슷하겠지. 눈이 동그랗게 변한 천호씨의 손을 꼭 잡았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도 나도 이런 임무-흔히 소전쟁이라고 말하는 무림맹과의 전투임무-에는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천호씨를 전장에 보내고 다음날 눈을 떠 무사하기만을 비는 심정은 아마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이니까.
"무림맹과 혼천교의 사이가 어느정도는 개선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이렇게 죽고 죽이는 상황이니까. 율후가, 반대가 심해서 말이지."
"…알겠다, 몸 조심하거라."
"응, 형도 형수님도?"
글쎄 형수님이 아니라해도! 붉어진 얼굴로 허둥대는 천호씨를 뒤로하고 그의 동생은 유유히 웃으며 제 본진쪽으로 돌아가버렸다.
*****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옆에 있던 천호씨가 무너지듯 쓰러졌다. 함께 떨어진 제 심장을 추스리며 얼른 그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왔지만 뒤늦게서야 알아챈 검고붉은 옷 위에 그보다 더 짙게 퍼지는 붉은 색. 황급히 그의 옷을 벗겨내고 상처를 마주하는데 절로 헛숨이 들이켜졌다. 검을 쓰는 나는 알 수 있었다. 분명 검에 의한 상처였다. 그 팔을 잘라낼 듯 휘두른 것이 분명한, 어깨에 길고 진하게 남은 상처.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상처 위를 닦고 소독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다친거예요. 티도, 안내고…"
다시 터져나올 것 같은 감정을 삼키며 그의 상처에 골고루 약을 펴바르며 물었으나 그는 대답없이 조용하게 웃을 뿐이었다. 웃을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그의 동생이 우리에게 남긴 말이 문득 머리속에 떠올랐다.
"천호씨. 우리도 이제 전투임무는 그만두는게 어때요?"
그의 시선이 억지로 뒤에 있는 나에게로 향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환부를 깨끗한 천으로 감싸매어주곤 그를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이젠 이런 거 싫어요. 내가 모르는 곳에서 다치는 것도, 내가 모르는 곳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는 것도, 내가 모르는 곳에서 당신이 쓰러지는 것도. 팔에 힘이 들어가려는 것을 그의 상처를 떠올리곤 겨우 눌러잡았다.
"…미안해요. 어리광 부려서."
*****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집 뒷편에 만들어둔 자그마한 연무장에서 수 백번, 수 천번 검을 휘둘렀다. 왜, 나는 그를 지킬 수 없지? 천호씨는, 날 신뢰하고 있나요? 천호씨에게 나는, 어떤 존재인가요?
*****
"천호씨,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다친 팔로 천천히 아침식사를 하던 천호씨의 시선이 나에게 와 닿는다. 언제나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에 나 역시도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말해야 해. 크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는 천호씨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일순 망설임이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지만, 그래도 말해야만 했다.
"전, 이제 천호씨를 위험한 곳에 보내고 싶지않아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오."
"그렇지만, 지금 내가 그만두자고 말 할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않소, 천호씨가 이어 말했으나 나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태로는 말할 자격이 없는게 맞아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 당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게, 무슨?"
"조금, 늦은 것 같기도 하지만, 꼭 내가 말해야 할 것 같아서요."
천호씨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내가 다시 말을 이어가길 기다려주는 것이다.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한 심장이 진정이 되지 않아 차분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정신차려 하운, 너 이런 애 아니었잖아. 몇 번을 숨을 고쳤을까 겨우,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러니까 천호씨, 부디… 평생을 함께 할, 내 반려가 되어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