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연성

[화야운령] Darling (상)

잰양ii 2015. 11. 16. 23:19
 
적막이 가득 차 있을거라 생각했던 집 안에는 예상외의 소란스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토록 기다려왔던 사람의 목소리는 빠져있어 운령은 의아함과 함께 거실로 발을 들였다.


“정말이지...”


눈에 들어온 모습은 그야말로 한숨이 터져나오기 충분했다. tv만 켜둔 채 뒷통수를 소파에 기대고 무엇이 그리 소중한지 리모콘은 꼬옥 쥔 채로 꿈나라로 떠난 저 사람은 분명 일주일 내내 운령이 애타게 기다렸던 제 남편일 것이다. 기분좋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건지 그는 전혀 깨어날 기미가 보이기 않았다. 밤새도록 촬영하느라 피곤했을 거란 것도 이해는 하지만 돌아오자마자 보여주는 게 이런 모습이라니. 일을 할 때는 제대로 하고 있긴 한 걸까 라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운령은 그저 그의 빈 어깨에 담요를 끌어 덮어줄 뿐이었다.


“좋은 꿈 꿔요.”




*****





눈을 떴을 때, 집안은 조용한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마 위를 일정한 속도로 통통 튀어다니는 소리가 멍한 머리 속을 현실로 끌어내리고 있었다. 뻐근한 어깨를 풀기위해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자 어깨에 아슬하게 걸려있던 담요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피식, 새어나온 웃음과 함께 담요를 정리해 소파위에 올려두었다. 잠들어 있는 제 모습에 부루퉁해 하면서도 담요를 끌어 덮어주었을 모습이 눈 앞에 선하다. 어느새 부엌쪽에서는 화야가 좋아하는 당운령표 카레향이 슬그머니 퍼지고 있었다. 그녀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은 아직 뻐근한 듯 했지만 그럼에도 가볍기 그지없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카레의 맛을 보고 있는 운령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놀란 몸이 가볍게 굳는 것이 느껴졌지만 더욱 꼬옥 끌어안을 뿐이었다.


“일어났으면 말하지 그랬어요? 깜짝 놀랐잖아요.”

“음, 그냥 이러고 싶어서.”


어깨에 얼굴을 부비고 있자 그녀가 간지러운 듯 잘게 떠는 것이 느껴졌다.

미안해, 너무 피곤해서 온 줄도 모르고 자버렸네.

괜찮아요. 그래도 저녁하는 동안 짐은 정리해 줄거죠?

응,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그저 내려놓은 채로 거실에 널부러져 있던 가방을 가지러 몸을 돌렸다. 굳게 잠긴 지퍼를 열자 갈아입었던 옷들에서 독한 향수냄새가 뭉게져 올라왔다.  현장에선 워낙 향수 냄새들이 섞여있다보니 잘 몰랐었는데 운령의 향이 가득한 이 집에 돌아와서인지 더욱 독하게만 느껴졌다.

가방에서 전자기기와 세면도구만 빼낸 뒤 동째로 세탁기에 집어넣어 버리곤 부엌으로 돌아왔다. 향이 무르익은 카레가 모락모락 김을 풍기며 막 접시에 담겨지고 있었다.


“카레 먹고 싶은거 어떻게 알았어?”

“멀리 촬영갔다고면 항상 카레 먹고 싶다고 했었잖아요.”

“그랬나?”


운령이 그읏에 담을 카레를 식탁에 내려놓는 동안 화야 역시 수저와 반찬들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겨우 마주않아 본 얼굴은 일주일만에 또 조금 예뻐진 것 같다는 팔불출 같은 생각을 하며 수저를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네- 맛있게 먹어요.”


화야가 일주일간 집을 비웠음에도 두 사람은 마치 어제도 함께 집에서 식사를 한 듯 익숙하게 마주본 채로 카레를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문득 바라본 운령의 빈 손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반지는?"

"아참, 저번에 세탁기에 들어가 버린 것 같아요. 그 뒤로 다시 찾지를 못해서..."

"그래? 음... 그러고보니 내가 고백했을때부터 끼던거였나. 슬슬 바꿀때도 된 것 같지?"


이미 결혼도 했는데 그게 왜 필요해요? 라며 운령이 웃으며 말했으나 화야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이 여자가 내 여잡니다 하는 표시같은 거니까."


그게 뭐예요-, 라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릴거란 예상과는 달리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아 화야는 고개를 들었다. 바라본 운령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릇을 뒤적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화르륵 달아오른 얼굴은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뭐야, 그게 부끄러워?"

"...갑자기 그러니까..."


화야의 기분 좋은 웃음소리와 함께 오랜만의 둘 만의 식사시간을 마무리했다.




*****




먹은 그릇은 화야가 정리하고 거실에서 기다리는 운령에게로 손을 닦으며 향했다. 그녀는 읽고 있던 서류를 내려옿고 화야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다했어요? 고마워요."

"이정도야 뭐- 맛있는거 먹었으니 내가해야지?"


운령의 옆에 푸욱 주저앉은 화야는 그녀의 어깨에 톡 고개를 내렸다.


"주말에 데이트할까?"

"네? 갑자기 데이트라니..."

"오래 촬영다녀와서 제법 쉴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가벼운 생각으로 이야기를 꺼낸 화야와는 달리 운령은 곰곰히 생각에 빠진 듯 했다. 입을 옷도 없는데, 화장도 안해서 엉망일텐데. 중얼거리는 듯한 운령의 말에 화야는 또 다시 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뭘 걱정하고 있는거야. 내 눈엔 네가 뭘 입어도 예뻐."

"...거짓말 말아요. 화야씨 눈은 서운할 정도로 객관적이예요."

"그건 직업병..."

"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 그래도 제일 예쁘게 보이고 싶은 걸요."

"...엄청 예쁜 소리를 하네."


그게 뭐예요오. 운령이 칭얼거렸지만 화야는 그저 킥킥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조용조용한 그와 그녀의 말들이 오가고, 오는 토요일 그녀의 근무가 끝나는 오후 3시부터 집에 다시 돌아와 간단한 점심을 먹고 데이트를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럼 그렇게."

"뭘 한건데요?"

"그건 비밀~"


치사해! 운령은 진심으로 소리쳤으나 화야는 다시금 키들키들 웃을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