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성을 나온지 몇 일이나 되었을까. 시간 개념이 점점 멀어져만 간다. 성 안에서, 다른 이들에게 둘러쌓여 있을때는 그리도 빠르게만 흘러가던 시간이 다시 홀로 남자 그 자리에 못을 박고 멈춰선 것만 같다. 정처없이 걷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도 목적지, 라는 것이 있었다. 그저 그 곳을 제 눈에 다시 한 번 담기위해 그는 성에서 나와 끊임없이 걷고만 있었다.
몇 일, 몇 주, 아니 어쩌면 몇 달이 지난 걸지도 모르겠다. 딱 필요한 만큼의 휴식만 취하며 끊임없이 걸었다. 기억이 떠오르는 대로. 제 몸이 향하는 대로.
결국 그는 도착했다. 그가 원하던 목적지에. 눈을 감으면 아직도 선명한 제 고향에.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눈을 뜨는 것이 두렵지만 마주하지 않을 순 없었다. 조심스레 눈을 뜨고,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그 시간대에 그대로 멈추어버린 그 날의 참상을 마주한다. 이동을 시작하고 인간들이 거처로 사용했던 영역은 비바람에 쓸려 많이도 사라졌지만 엉망으로 부서진 채 낡아빠진 나무 터들과 그 시간 그대로 말라붙은 핏자국만이 남아있다. 구역질이 날 것만 같은 배경속에 그는 서있었다.
오래 그 곳에 서있지는 못했다. 많이 먹지도, 오래 쉬지도 않고 끊임없이 이곳만을 향해 걸어왔기에. 나무둥치에 기대어 얕은 숨을 이어가다 그는 곧 눈을 감았다. 평화롭기만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드디어 오시는구만."
"너무 일찍 오는 거 아냐? 좀 더 있다 와도 우린 괜찮은데-"
"어서와, 하이카."
그 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
"미안해, 기다렸지?"
목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한 말이었지만 분명 그들에게는 닿았으리라.
느려져만 가던 숨이, 드디어 멈추었다. 너무나도 평온하게, 마치 처음부터 그럴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의 시간이 드디어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