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거 알아요? 나 할 말 있어서 너 여기까지 데려온거예요. 아무튼, 운동은 안한다고 고집을 부려대니 여기까지 오기도 참 힘들었네요.
처음, 처음엔 말이죠. 즐겁기도 했고 짜증이 나기도 했어요. 애초에 섬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하나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거든요.
모두에게서 필요한 자료와 데이터를 얻고 나면 모두 죽여버릴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 네 얼굴이 있었어. 내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너는 어떤 데이터를 남겨줄까, 그런 생각에 들뜨기도 했었죠.
내가 그렇게 무리하지 말라 잔소리를 했는데, 결국 이게 너의 마지막인가, 라고 생각하니 착잡하기도 하고 너 답다는 생각도 들고. 그냥 그랬어요 그 땐.
" 좋은 아침 가이. 오랜만이네요 푹 잤어요? "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마음은 이미 그것들에 삼켜진지 오래였죠. 반가운 척 연기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너 역시도 내 연구의 발판이, 초석이 되어 영원히 그 안에 이름을 남기는 거라고. 그거라면 썩 괜찮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 설마 내가 빚 받았으니 이제 안녕, 잘가요 하고 내칠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
" 안심해요, 절대 그런 일 없을테니까. 가이. 넌 내 소중하고 유일한 친구예요. "
넌 내 친구였으니까.
******
네가 죽었을 때,
나는
내가 예상하고 있던 결과였기에
담담할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손이 떨리고
그런데 눈 앞이 흐려지고
그런데 사고가 멈추고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 나랑 약속한 거, 하나도 못지켜서 어떡할거예요 너.
연구하던거 알려주러 온다면서. 마법 인챈트 아이템도 구해준다고 했으면서.
빚진것도 아직 다 못갚았잖아요... "
심장이 멈춘 것 같았어.
시간이 멈춘 것 같았어.
그래, 바보같게도 그때서야 알아버린 거예요. 나에게 넌 그정도의 존재가 아니었다는걸.
바람에 실려서 내가 살아남길 바란다는, 네 목소리가 들린 것은 그저 단순한 착각이었을까.
내 의지도
내 뜻도
내 길도
내 정의 마저도.
너 하나 때문에 흔들렸어.
그제서야 알아버렸어. 네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다는 걸.
빛바래져 버렸어요 모든 것들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되어버렸죠.
Du bist mein Alles, Guy.
" 가이, 의 장례식이요.
가족도 없고 연이 있는 사람은 나 뿐이라 내가 책임지게 되어있을거예요 분명.
서로에게 맡기자는 이야기도 했었고. "
네 장례식을 입에 담으면서도,
어쩐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들어서.
현실에서 눈을 돌리는 것을 선택했어요. 그냥, 그냥.
처음부터 너는 이곳에 오지 않았고, 원래의 계획대로 진행하면 그만이라고. 연구가 끝나고 너를 만나러 가면 된다고.
처음부터, 처음부터
너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고 너를 이곳에 오지 못하게 했었어야 했을까.
너에게 모든 것을 설명했다면 너는 내 뜻을 믿어줬을까.
너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했던건 내가 너를 믿지 못해서였을까.
나에게 너는 어떤 존재였으며
너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나에게 너는 어떤 존재였나.
******
" 생각 할 것도 없어요. 난 끝을 봐야겠어. 다 죽여버려요. 알겠죠? "
신이시여, 그대의 앞에 파멸 있기를.
내일,
끝이 오고 모든 것이 사라져서.
너와 만날 수 없게 되고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나게 되면.
성공은 있을까요.
몰라, 모르겠어. 모르겠어요.
그런데. 너를 두고 걷기 시작해버려서 나아갈 수 밖에 없었어.
.
.
.
.
.
그것이 꿈의 끝. 그리고 현실의 시작.
아직까지도 나는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이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어디까지나 가정의 세계라 농담처럼 말했지만, 난 알고 있어요.
내가 분명 그런 것을 생각했다는 것을. 그런 정의를 꿈꾸고 있었다는 것을.
다만 그저, 네가 다시 내 옆에 있다는 것이 기뻐서.
그저 지금은 그것으로 만족해버려서.
그것 뿐이었어.
" 날 너무 잘 알아서 탈이라니까.
같은 상황이라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은 못하겠네요.
만약 그런 일이 현실이 된다면, 꼭 날 막아주길 부탁할게요? "
언젠가,
또다시 끝이 오고 모든 것이 채워져서
너에게 등을 돌려버린 그 때를.
이런 오늘을.
이런 나를.
그저 잊지 않아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바라며 살거에요.
" Du bist mein Alles, Ich liebe dich. Guy. "
" 너는, 내 전부예요. 사랑해. "
'커뮤니티 > 로그' 카테고리의 다른 글
ㅇㄹㄷㄷㄹㄴㅇㅁㅈㄱ (0) | 2017.01.17 |
---|---|
[AARON]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0) | 2016.09.13 |
[BLACK] 너에게서 찾은 것 (0) | 2016.07.08 |
[BLACK] 너에게 보내는 선전포고. (0) | 2016.06.16 |
[BLACK] 그럼에도 너에게 하고 싶은 말 (0) | 2016.06.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