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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연성

[원몽] 151111 초코과자의 날

 

 

"좋은 아침."

 내가 먼저 건넨 인사에도 다소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올린 귀몽이, 얼굴을 확인하고서야 비싯 웃었다. 보아하니,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고 있는게 분명하군.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아쉽다고 해야할 지 조금 미묘한 기분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좋게좋게 생각하자면 분명 나쁘지는 않다. 괜히 오늘이 특별한 날이란 걸 알아서 아마도 반쯤은 장난으로 학생들이 건네 줄 초코과자에 얼굴을 붉히는 것보다는 백 배, 천 배 나으니까. 아침부터 도서실엔 왠일이냐는 듯 올려다 보는 그에게 몇일 전 대여했던 책을 가볍게 내어보였다. 그냥 아침인사하러 왔다고 하기엔 아직 민망해서 괜히 한 번씩 만들어두는 핑계거리였지만.

 "이거 반납할 겸."

 아아,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귀몽을 보고 있자니 괜히 또 심장이 두근 거리는 기분이었다.

 "몽, 마치고 시간 비워 줘."
 "내 시간은 항상 원이 껀데?"

 말은 잘해. 그래놓고 먼저 퇴근해버리고선. 학생들이 아직 등교하기 전의 조용하기만 한 도서실에서 아침에 나누는 키스는 언제나 달다 못해 혀가 마비되어 버릴 것만 같지만.



*****




 생각보다 선물을 고르기가 힘들었다. 나이 다 먹은 어른이 이런 이벤트날을 챙기는 것도 사실은 우스운 일이라는 기분도 없지않아 있었고. 크고 작게 몸이 자주 아픈 그가 이런 이벤트를 제대로 다른 누군가와 즐겼을리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없었던 걸로 만들어 버릴 테지만. 그러니까 더더욱 무언가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초코과자는 식상하잖아. 솔직히 좀 볼품없고. 좀처럼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서 겨우겨우 선물을 주문한 것이 겨우 일주일 전이었다. 시간을 맞출 수 없을 것 같아서 얼마나 애가 탔던지. 다행히도 어제 그에게 건내줄 선물을 받아 볼 수 있었다.



*****




 "도망 안갔네?"
 "도망 간 적 없다니까?"

 거짓말, 저번에 같이 돌아가자니까 먼저 퇴근해 버렸잖아, 장난기가 생겨 그의 볼을 콕콕 찌르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단번에 붉어지는 얼굴이 귀엽다.

 "그, 그야! 갑자기 원이 집으로 가자고 하니까...!"
 "네가 지래짐작했던 거잖아."

 그랬지. 한 참이 지나고서야 들려오는 대답에 터진 웃음을 입안으로 삼켰다. 꼼질거리기 시작한 손가락을 풀어 깍지껴 손을 맞잡는다. 그렇게 많이 먹였는데도 아직까지도 얇은 선을 보며 정해두었던 행선지를 모조리 바꿨다. 역시 밖에서 사먹이는 걸로는 안되겠어.

 "자 갈까-"
 "응-"

 오늘 행선지는 정말로 우리집이지만 말이야.



*****



 "안들어가?"
 "원이 집으로 온다고 한 적 없잖아..!"

 그야 당연하지 저번에 농담으로 말한 걸로도 도망갈 정도였는데 진짜로 말하면 네가 따라왔을리가 없잖아. 그의 등을 꾹꾹 밀어 제 집안으로 밀어넣고는 겨우 문을 닫았다. 설마 도망가지는 않겠지만... 슬쩍 뒤를 돌아보니 투덜거리면서도 신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썩 귀엽다. 분명 덩치는 나보다 클텐데.

 "맛있는 거 안주면 가버릴꺼야."
 "그러지 않아도 배 터질만큼 줄거야."




*****



 진짜로 배터질만큼 줄 거라곤 생각 못했어... 작은 소리로 칭얼거리는 그를 뒤로한채 빈 그릇을 씻고 정리했다. 찬장에 넣어두길 잘했지. 그릇을 정리하는 척, 안쪽에 넣어두었던 상자를 꺼냈다. 

 "몽, 바로 누워있으면 안좋아."
 "...일어났어, 방금."

 테이블에 엎드리듯이 느리게 몸을 일으키는 그를 보다 맞은 편에 앉았다. 등 뒤에 숨긴 채인 상자가 꽤나 묵직하게 존재감을 자랑한다.

 "-아, 원이 뭔가 숨겼어."

 이런 건 눈치는 빨라선. 짧게 혀를 차면서도 웃어버렸다. 조금 더 뜸을 들여서 분위기를 만들어볼까 했는데... 사실 그런 건 잘 하는 편도 아니고. 잘 묶인 상자를 그 앞에 내밀었다.

 "-? 뭐야?"
 "선물. 너 아직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지?"

 오늘? 오늘이 무슨 날이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상자로 향하는 손을 멈추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 또 웃어버렸다. 기뻐해주면 좋겠는데. 

 "그냥, 다들 챙긴다는 초코과자. 빼빼로데이인데. 이 나이먹고 그냥 과자만 선물하진 모양이 안나잖아? 커플 아이템도 없겠다- 이 때다 싶어서."

 그는 포장이 풀려 제 눈에 비친 비슷한 디자인의 시계와, 나를 계속해서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둘 다 주는 건 아닌데. 그를 향해 제 왼팔을 내밀었다. 채워줘- 작게 속삭이니 그가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함께 포장 된 시계를 하나 꺼내 내 팔에 채워주었다. 상자를 끌어와 남아있는 시계를 들고 그의 팔을 끌어와 같은 위치에 채워주었다.
 멍하니 바라보는 표정이 귀여워 괜히 뺨을 문질러준다.


 "이것저것 생각해 봤는데, 성격탓인지 조금이라도 실용적인 걸로 고르게 되더라고."

 "뭐야, 감동했어?"

 "앞으로는 더 해줄건데 벌써 그러면 어떡하려고?"

 "...좋아해.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