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열이 오른다.
조사를 시작하던 첫날 제때 수습하지 못했던 상처에서 올라오는 열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럴 정신은 없으니까. 라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며 오늘도 걸음을 옮겼다.
ㅡ손 발이 떨린다.
오르는 열때문에 오한이 드는 것일지. 아니면 단순한 긴장감일지. 어쨌든 지금 상태가 검을 휘두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설거야? ...어디에도 물러날 곳은 없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끔찍한 장면들에 벌써 이틀 밤을 설쳤다. 용병인 저에게 이런 일은 분명 하루이틀이 아니었지만 그들을 믿고 있었기에 충격이 더 큰 것이겠지. 눈밑, 아니 얼굴이 까맣게 죽었으리라. 평소의 저였다면 무슨 변명을 해서라도 쉬었을텐데. 스스로도 아플만큼 자각하고 있다. 지금 이 고집이 저에게 도움이 될리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발을 옮겼다.
이렌, 에피도트, 가이, 미하일.
그 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머릿속에서 떠올리면서.
손이 느리다, 원하는 움직임대로 발이 따라와주지 않는다. 속도가 생명인 저에게 속도가 붙지 않는다. 절로 입술을 잔뜩 깨물었다. 움직여, 움직여, 움직여.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제발 움직여!
한계에 다달은 몸에 힘이 주륵 빠졌다. 그렇게나 부수고 뛰어넘고 싶어하던 한계인데 이런 필사적인 순간에서 조차 넘어서지 못했다.
" 꼴이 말이 아니네요. "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여기서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하우스로 돌아가면, 또 보이지 않는 얼굴이 늘어나진 않을까. 먼지와 비린내나는 검붉은 액체로 옷도, 머리도, 아니 전부 엉망인채로 짧게 눈을 감았다.
이렇게 죽어버리면, 저를 기억해주는 이가 하나라도 있지 않을까.
...
...
...
헛소리. 살아야한다, 살아야했다. 무사히 돌아온 이들과 함께 살아있음에 겨우 안도하고 한숨 돌리는 일이 있어도. 또 보이지 않는 이들을 기다리느라 가슴 졸이게 되더라도.
무엇이든 일단 살아야 가능하리라.
솔직한 심정으로, 어떻게 다시 일어나서 어떻게 다시 하우스까지 돌아온 것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시야가 흐려 눈 앞조차 잘 보이지 않았지만.
살아야 했다.
" ...안녕하세요 3단장. 치유를, 부탁해도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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